사람은 살면서 ’인간미‘라고 하는 여러 겹의 입체적 공간들이 내부에 저절로 생겨납니다.

누구나 웃음과 행복한 미소 한 꺼풀을 벗겨보면 길어진 그림자처럼 스스로에게서 돌아앉은 슬픔과 아픔이 있기 마련이고, 누구나 사는 모습들이 제각각인 것 같아도 슬픔과 아픔이란 모두 비슷비슷 같은 피부, 고만고만한 신장, 사람 닮은 모습이고, 그러기 때문에 문제가 자식이거나, 부부이거나, 직장이거나, 특히 요즘 같은 covid19 시대엔 더 말할 것도 없이 질병에 대한 무서움이나 불안이거나 서울 사는 친구가 돌아앉았는데 그 그림자가 여수 사는 나를 찾아오기도 합니다. 아픔이나 슬픔이 시공을 뛰어넘습니다. 같은 입체적 공간 안에 친구와 내가 만나는 거겠지요.

심리학에서 보면 TPP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정동‘을 파악해야 실지로 분석할 수 있는 용어입니다.

* 정동(情動): 심리학에서 말하는 실지 감정의 흐름, 혹은 감정 그 자체.

* TPP: T(Time,시간), P(Place, 장소), P(Person, 사람)

어느 공간에서 내가 예민해지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언제 내 감정의 상처가 부어올라 멍드는지, 어느 시간대에 내가 즐거운지. 어느 장소에서 내가 편안한지, 누구를 만나야 내가 마음을 기댈 수 있는지 나의 TPP를 확인해야 내가 건강해집니다.

아프고 슬픈 내 감정의 흐름이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사람을 만나서 더 아프고 고통스럽다면 그런 시간을 피해야 하고, 그런 장소를 가지 않아야 하고, 그런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게 좋겠죠.

악순환의 고리를 맴돌지 않도록 그렇게 사소한 마음부터 챙겨보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일에 휘말렸는지 상상하지 않아도 바로 엊그제 일 같은, 부정적인 일들이 금방 떠오르는 마음의 공간, 그렇게 떠오르는 생각들은 보통 부정적이고 아픈 경우가 많습니다.

밝은 햇살 비추어주는 따스한 공간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톡톡, 건드는 아픔 덩어리가 빗방울처럼 축축해서 말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바닥이 차가운 우울의 공간은 내가 딱딱해져서 만들어집니다.

그 딱딱함이 나의 내부로 달려들어 부서지면 스스로를 날카롭게 찌르는 우울이 됩니다. 내 밖으로 치달려가 외부에서 부서지면 다른 사람을 상하게 하는 분노, 혹은 격노의 모습이 되는, 어느 모습이거나 ’공격성‘이라는 날카로운 양상을 띠게 됩니다.

결코 허락하지 마세요!

아픔과 슬픔은 많이 걸어다니게 하세요. 사람과 사람의 ’인간미‘라는 공간과 공간을 잇게 하는 건 기쁨보다는 이들이니까요. 기쁨은 걸어 다니면서 햇살의 웃음꽃을 피우게 하고, 온 나무들이 손뼉 치게 하고, 달도 미소짓게 하지만, 그렇지만

아픔과 슬픔은 ’인간미‘라는 귀중한 선물을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남기니까요.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어려움을 극복했을 때의 모습이라고, 그렇다고 고집을 피워봅니다.

혹시 돌아앉은 그리운 그림자 하나, 가만히 스며들거든 말없이 지켜봐 주는 하루이시길! 그런 공간 하나쯤 지어놓으시기를! 그러한 공간을 이어나가시기를!

그래야 사람과 사람 사이 그 공간에 바람 들고, 햇살 들고, 꽃 피고 강물이 흐르겠죠. 공간을 잇는 법, 부끄럽게도 사람보다는 자연이 먼저 해 놓은 일, ’공간‘, 혹은 ’여백‘이라는 단어를 늘 자연에게서 배웁니다.

◆박주희: 본지 교육문화 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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