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길을 거닐던 호방한 영국 귀족 청년이 죽어가고 있었다. 더운 날 수영하려고 찬물에 뛰어들었다가 심장마비가 온 것이다. 마침 길을 지나가던 건장한 시골 청년이 이 청년을 구해준다.  청년 아버지 귀족은 시골 청년을 런던에 초청하여 호의를 베푼다. 꿈이 있었지만 가난하였던 시골 청년에게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공부할 기회를 준다.  이들 운명적 우정은 계속되고 귀족 청년은 중요한 시기에 영국 수상이 된다. 시골 출신 청년은 훌륭한 의학자가 되어 세계 최초로 페니실린을 만든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연합국 총수요 막중한 역할 감당하던 수상은 폐렴을 앓고 사경을 헤맨다. 이 때 그 친구가 만든 페니실린이 그를 죽음에서 건져준다. 그들 개인적 우정이 마침내 세계사를 가름할 큰 사건으로 기록된다. 이 진기한 우정은 우리가 아는 대로 윈스턴 처칠 수상과 의학자 알렉산더 플레밍 경의 관계이다.

서양판 관포지교(管鮑之交)라고도 일컬어지는 진기한 우정 이야기들이 한국에도 존재한다. 레이니 주한 전 미국대사와 박봉배 전 총장과의 관계이다. 레이니 대사는 에모리대학교 총장이 되어 신분을 밝히지 않고 인근에 살고 있던 노년의 코카콜라 회장을 찾아가 친교를 맺으며 이야기도 해주고, 잔디도 깎아주고 하여 마침내 천문학적 자금을 대학에 기부하게 했다고 하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이야기이다. 이 레이니와 노년의 코카콜라 회장의 덕으로 에모리대학은 남부 최고의 유수한 대학으로, 또 소속 캔들러신학대학원은 미 연합감리교회 13개 대학 중 가장 우수한 목사들을 양성한다는 평을 듣게 된 것이다.

1968년경이다. 젊은 레이니가 한국에 선교사로 내한한다. 미국 유학하여 석사학위를 준비하고 있던 박 총장은 친분 있는 선교사를 통하여 레이니와 사귄다.  짧은 기간이지만 영특한 박 총장은 유학전 한국 생활에 서투른 레이니 대사에게 한국 생활에 적응하도록 도움을 준다.  레이니 선교사는 박 총장의 사모에게 일자리를 주어 유학하게 된 박 총장의 미국 공부를 돕는다.

세월이 흘러 박 총장은 석사학위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감신대 교수로 활동하다가 다시 박사학위를 위하여 미국에 들어간다. 레이니 대사는 이때 선교사역을 마치고 미국 에모리대학 교수와 일반 목회를 겸직하고 있었다. 어려웠던 유학 생활을 하며 박 교수는 도저히 경제적으로 공부를 계속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박사학위 공부를 포기하고 귀국하려고 한다. 레이니 대사는 한국 친구 박 교수를 돕기 위하여 교인들을 설득하여 담임 목회 자리를 박 교수에게 양보한다.  당시 배타 보수적 남부에서 한국인이 담임 목회하기는 불가능했지만 레이니 대사가 박 총장을 위하여 그렇게 한 것이다. 후에 한국에 연고가 있는 레이니는 주한 미국 대사로 부임하게 된다. 이 때 박 총장은 이미 서울 감리교신학대학 총장을 거쳐 목원대 총장에 재임하고 있었다.  이후 그들이 나눈 우정과 친교의 뒷이야기는 쉽게 짐작할 만하다. 이상은 최근 필자가 박 총장께 재확인한 질긴 우정 이야기이다.

우리는 숱한 사건과 행위 속에서 관계를 맺고 있다. 모두 연결되는 삶을 살고 있다. 사건과 행위 하나하나가 인격을 결정하며, 역량과 미래를 결정한다. 성경이 말한 대로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다.  기도를 많이 하던 원로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영적 법칙은 수학 공식보다도 더 정확하다’고. 하나님이 듣고 계시고 생명이 끝이 없는 숱한 천사와 영적 존재들이 증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눈만 속이고 귀만 속이면 될 것이라든가 시간만 넘기면 될 것이라고 속단하지 말자. 그렇다고 고의로 마음에도 없는 선한 일을 기획하거나 억지로 관계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아니 어쩌면 억지로 십자가를 진 구레네 시몬처럼 일부러 그렇게 해야 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뜨겁던 여름이 지나간다. 어김없는 대자연 속에서 물러설 것 같지 않았던 폭염의 날들이 접혀지고  있다.  결실의 계절 가을이 온다.  뙤약볕 수고한 농부, 땀을 닦으며 책과 씨름하며 자판을 두드리며 이론을 정립한 학생과 학자들, 직장인들이 노력한 결과를 열매로 거둘 계절이다.

인생 가을을 넘어 겨울이 오기 전 이렇게 생각해봄 직하다. 나는 이러한 선한 일들과 우정을 심고 있는가? 위에 말한 관포지교의 세기적 어른들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내 마음을 스스로 감동하게 하고 후회 없는 추억으로 기록될 아름다운 우정들, 작은 사랑의 이야기들을 몇 개씩은 심고 있는가?

김기형 총무(충청연회 )  webmaster@shina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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