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史로 보는 정치 8] 야권, 새로운 출발을 향한 명량해전의 또다른 교훈
  새정치민주연합의 극심한 내분사태가 정리될 분기점으로 예측했던 문재인-안철수의 회동이 성과없이 끝났다. 이제 문 대표의 계획대로 중앙위는 열릴 것이며 혁신안은 표결에 붙여질 것이다. 그리고 갖은 잡음은 있겠지만 이 안은 통과될 것이며, 여세를 몰아 문 대표는 자신의 재신임안도 뜻대로 진행하여 그 또한 시끄럽지만 통과시킬 것이다.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이란 정당은 오리지널 ‘친노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서 현재 야권으로 불리는 정치세력의 황폐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것은 순전히 나의 예측이다.

▲  문재인 대표가 자신의 재신임 투표를 발표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새정치민주연합 홈페이지.

우리는 이런 역사를 2002년에서 2004년에 이르는 과정에 목격했다. 지금 친노라고 말하는 세력의 집요한 권력주의가 가져 온 극심한 혼란, 결국 이런 혼란은 그 극심한 권력주의자들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므로 평정했었다. 그러나 평정으로 당시 모든 혼란은 정리되고 세력은 승승장구했는가? 아니다 잠시 평정한 뒤 반짝하는 것 같았으나 세력통합의 기운을 아주 죽였다. 그렇게 죽인 뒤  10년을 암울하게 했던 기억들...2005년에서 2015년 ‘야권’의 정치사다.

‘기적의 역사에 대한 희망과 기대’...이는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호남 유권자들이 2002년 노무현을 지지했던 이유의 본질이다. 그리고 호남인들의 ‘기적의 역사에 대한 희망과 기대’는 노무현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세력을 양분시키면서 전임자 죽이기에 나섰을지라도 놓을 수 없었다. 노무현은 이런 기대를 가진 호남의 약점을 철저히 이용했다.

민주당을 쪼개서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그래도 호남은 우리당을 다시 밀었다. 이 또한 ‘기적의 역사에 대한 희망과 기대’였다. 그러나 서글프게도 ‘기적의 역사’는 결국 노무현에서 종결되고 다시는 그 같은 ‘기적의 역사’는 기대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 노무현에 의해서다.

새누리당이 지금 같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창출한 배경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열한 반칙과 비겁한 암수가 난무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런 비열한 반칙과 비겁한 암수를 용인한 권력이 노무현 권력이다. 노건평-이상득 라인, 즉 형님라인의 밀약 같은 것을 전혀 믿지 않는다고 해도 BBK와 관련된 이명박 동영상 한편만 제대로 수사했으면 이명박 정권은 탄생할 수 없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와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낸 박영선은 최근 발행된 자신의 저서 ‘누가 지도자인가’에서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최종 승리한 정동영 후보가 그 전당대회 후 후보 확정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화로 보고한 뒤 얼굴이 백짓장처럼 창백해졌다”고 적었다. 이어서 당시 정 후보의 얼굴 하나로 선거는 이길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이 회고는 곧 노무현의 정동영 비토, 이명박 용인이란 간접화법이다. 박영선은 그 책에서 2007년 11월 무안공항 준공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이 “호남 뭉치자는 말만 하며 저급한 말만 쓰는 호남지역 국회의원들과는 답답해서 일을 못해먹겠습니다”라고 발언하여 또다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고도 적었다. 2007년 12월 19일이 대선일인데 현직 대통령이 대선 한달 여 전인 11월 8일 다른 곳도 아닌 전라남도 무안에서 다시 호남 정치인들을 비토한 것이다.

이길 수 없는 대통령 선거...참패는 기정사실이었다. 대선에 참패한 직전 여당은 다음 해 총선에서도 참패한다. 그럼에도 지금 문재인을 지지하는 친노세력은 대선 참패는 정동영 탓, 총선 참패는 손학규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그들의 어떤 평가든, 정치 역사를 기술하는 역사가들의 기술은 참여정부에 대한 반감이 대선과 총선의 한나라당 압승으로 귀결되었다고 기술한다.

대통령을 배출하고 국회 원내 과반인 152석을 획득했던 여당이 권력을 빼앗긴 뒤 치른 총선에서 81석으로 줄어든 이 엄연하고 명백한 현실은 노무현 참여정부의 실패가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다. 그나마 81석을 지킨 주인공은 ‘호남 유권자’였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호남 유권자들은 그 척박한 현실에서 81석을 반한나라당 전선의 최후 교두보로 지켜냈다.

특히 당시 81석은 매우 깊은 뜻을 함유하고 있다. 총선의 역사가 증명한다. 87민중항쟁 후 양김분열로 1987년 대선에서 패한 야권은 1988년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이란 양당으로 총선에 임했다. 이 척박한 환경에서 ‘호남야당’ 평민당은 70석을 얻어냈다. 순전히 호남유권자의 힘이었다. 당시 평민당과 겨룬 ‘영남야당’ 통일민주당은 59석이었다. 이 둘을 합하면 129석...2012년 전 야권이 통합한 민주통합당이 얻은 127석과 비슷하다.

그런데 바로 1년 후 ‘영남야당’이 야권에서 떨어져 나가서 여권이 된다. ‘3당합당’이란 이름으로 거대여당 일원이 되더니 그 여당 주류가 된다. 이들과 겨루기 위해 ‘호남당’ 평민당은 민자당 외 나머지 ‘영남야권’ 세력과 통합을 추진하여 ‘통합민주당’을 만들었다. 그 결과는 1992년 총선의 97석이다. ‘호남당’ 외에 27석을 불렸다. 하지만 이 세력은 1995년 다시 ‘호남당’ 국민회의와 ‘비호남당’ 민주당으로 분열한다. 결과는 ‘호남당’으로 출진한 새정치국민회의는 79석...‘비호남당’ 민주당은 15석...합하면 94석...단일세력이면 이겼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것은 가정일 뿐이며 실제는 앞선 민주당에서 3석만 준 셈이다.

이 분열은 이들을 아주 적으로 만든다. 당시 '영남야권' 15석은 지금의 새누리당에 투항한다. 그리고 호남당 국민회의는 그 영남야권이 아니라 저쪽(현 여권 세력)에서 이탈한 이인제 세력 이종찬세력 등과 합친다. 그렇게 합하여 2000년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이 얻은 의석은 115석이다. 원래 ‘호남당’ 세력(70~80석)에 비해 30~40석이 불어난 대 성과다. 당시 언론들은 패배라고 평가했지만 냉정하게 분석하면 ‘호남 주류 정당’으로선 대 성공을 거둔 셈이다. '영남야권'의 기득권이 있다는 이기택의 '민주당'과 아주 결별한 뒤의 결과다.

여기서 우리는 정권재창출을 점칠 수 있다. 김대중의 집권을 통하여 호남은 ‘기적의 역사’를 경험했다. 연이어 115석이란 성적을 받아냈다. 때문에 ‘기적의 역사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충족할 후보로노무현을 선택하므로 다시 기적의 역사를 만들어 냈다. 그랬으므로 그 희망과 기대는 대북송금특검 열린우리당 창당까지 ‘용인’이 가능했다. 이 용인은 2004년 열린우리당 152석의 근간이다. 열린우리당 152석이란 과반 의석의 기반은 누가 뭐래도 호남이다

그리고 4년...호남은 ‘기적의 역사에 대한 희망과 기대’에 대한 처절한 배반을 당했다. 앞서 박영선 의원의 저서 예에서 언급했듯이...이후 호남은 오로지 '호남세력'으로만 남는다. 그 결과가 2008년 81석이다. 결국 호남만 두고 모두 흩어졌으나 종자세력 81석은 지켰다. 1988년 평민당으로 남은 70석, 1996년 국민회의로 남은 79석, 2008년 민주당으로 남은 81석...8년 단위로 종자를 지킨 선거...이것이 호남이 가진 브랜드 파워다.

그렇다고 이 ‘브랜드 파워’가 100% 순수한 ‘민주주의 사수’라는 원칙과 상식에 대한 의지의 소산이라고 말할 수 없다. 호남도 호남의 이익을 위한 이익투표를 했으며 그 결과가 남긴 수확일 뿐이다. 따라서 이 70~80석은 거대여당의 독주와 횡포에 맞서 우리가 써먹을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무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유용한 무기를 ‘지역주의’ ‘호남자민련’ ‘호남당’ 명칭이 싫어서 포기한다면 정권교체도 새로운 역사도 말하지 말아야 한다.

명량해전. 13척의 전함으로 왜군 300여 척을 물리쳤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면 안 되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 그 배13척에 담긴 진리다. 그 배가 어디서 왔을까. 그 중 절대다수인 12척이 경상우수사 배설이 칠천량 해전 당시 도피하면서 숨겨 놓은 전함들이었다. 나머지 한척은 이순신이 나중에 찾아서 채웠다. 그래서 이순신이 가진 전함은 13척이 되었다.

▲   영화 '명량' 포스터 캡쳐

칠천량 해전의 대패로 원균이 전사하고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권된 이순신은 1597년 음력 8월 18일 회령포에서 이 전함 10척을 거둔다. 그리고 이후 2척을 더 회수했다. 이순신이 이처럼 흩어진 전함을 찾으며 이 전함에서 흩어져 숨은 수군들을 찾아 다닐 때 칠천량의 패전의 손실이 크다며 선조는 수군을 폐지하려고 했다.

여기서 이순신이 지금도 유명한 장계를 올려 수군폐지불가론을 펼쳤다.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남아 있나이다. 죽을 힘을 다하여 막아 싸운다면 능히 대적할 수 있사옵니다. 비록 전선의 수는 적지만 신이 죽지 않은 한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설득된 선조는 수군 유지를 허하고 이순신은 남해안 일대를 돌아다니며 흩어진 병사들을 모아 수군 재건에 전력을 다했다. 당시 이순신이 모은 수군들은 후일을 도모하며 숨어서 훈련하고 실력을 기른 군인들이 아니었다. 무능하고 비겁한 지휘관을 따라 목숨 부지를 위해 도망친 오합지졸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들을 모아 수군을 재건하고 전선에 세웠다. 그들이 믿음직스럽고 예뻐서가 아니었다. 쓸만한 군인이라곤, 가용할 무력이라곤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합지졸 그들과 함께 명량해전 승리라는 역사의 기적을 창조했다.

명량해협의 왜군은 조선 수군의 재건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칠천량 해전의 승기를 몰아 노도와 같이 쳐들어왔을 뿐이다. 충무공은 내가 키운 정예군은 원균이 다 말아먹었다는 푸념을 늘어놓진 않았다. 충무공은 적전도피자, 패잔병 집단을 거느리고서도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오합지졸들이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원동력은 그저 슈퍼스타 충무공 한 사람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수군도 아니지만 침략자 왜군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호남 민중들의 적극적 도움이었다. 이순신의 ‘약무호남시무국가’란 말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새누리당은 현 야권이 재건되기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더 부서지고 망가지도록 부실한 부분을 적극 공격하면서 노도와 같이 밀고 들어온다. 이미 순천에서 확보한 교두보를 통해 명량해협의 요새 ‘울둘목’을 넘으려고 한다. 누가 울둘목을 지킬 것인가? 충무공이란 슈퍼스타 한사람이? 새누리당으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정치인도 국회의원도 뭐도 아닌 호남민중이다.

호남은 ‘지금까지는’ 적어도 ‘영남진보세력’이라고 말하는 ‘친노그룹’이 영남 지역에서 한나라당을 견제할 만큼 충분히 성장하도록 기다려주면서 자양분을 제공했다. 이 자양분이 이른바 호남정서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영남야권’이란 명찰을 단 ‘친노세력’이 이 호남정서에 기생하여 정치업계에서 군림하려 하고 있었다. 능력이 되면 좋겠는데 능력 또한 함량 미달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지금도 자신들의 ‘기생’을 호남 민중이 ‘용인’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 믿음이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의 분란 이유다.

반면 영남은 ‘이인제 학습효과’를 통해 더 철저히 뭉치고 있다. 그래서 가시적인 세월 내에 영남에서 ‘기적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정치를 종교의 영역에 올려놓는 사람들은 메시아의 강림을, 유토피아의 도래를 하염없이 꿈꾸며 호남정서가 이전과 같아야 한다고 강요한다. 하지만 호남은 그 강요의 허구를 학습효과를 통해 깨닫고 거부한다. 순천과 광주, 관악과 성남에서 강하게 거부의사를 피력했다.

저들도 이제 그 강요가 통하지 않음을 슬금슬금 인정하고 있다. 신당설, 호남의 독자생존설, 이런 설들이 그냥 설들이 아님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러므로 그 설들의 진원지 차단을 위해 하는 일들이 지금의 분란 근원인 ‘말로만 혁신’이다.

대선 한 달을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은 전라남도 무안에서 “호남 뭉치자는 말만 하며 저급한 말만 쓰는 호남지역 국회의원들과는 답답해서 일을 못해먹겠습니다”라고 일갈했다. 호남이 다시 정권을 잡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신호였다. 그리고 곧바로 “한나라당 집권해도 나라 안 망한다”는 ‘명언’이 나왔다. 10년이 되어 간다. 그 10년은 이제 경로의존성이 통하지 않을 만큼 긴 시간이다. 경로의존성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저들의 시효가 만료되었다는 거다.

‘모순된 구조’를 ‘숙명적 장애’로 받아들이면, 그것은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 바로 거기서부터 재활과 재건을 시작하는 거다. ‘개혁 이념 지향적 지역초월 전국정당’보다 아무리 ‘호남당’이란 비아냥을 들을지라도 ‘기적의 역사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가질 수 있는 교두보로서의 신당, 그 신당의 시작이 ‘재활과 재건’의 새로운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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