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안산에서 또 잔인한 수법의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범인이 검거되었습니다. 경찰은 ‘특정강력범죄 처벌법’에 근거해 체포한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했습니다. 흉악범 얼굴 공개는 강아무개 사건 이후 뜨거운 사회적 쟁점이 되어오고 있습니다. 언론인권센터는 2009년 2월에 범죄자 얼굴공개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해 자의적인 얼굴 공개는 인권침해의 소지가 크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안산 단원경찰서는 범인 얼굴 공개 이유에 대해 “피의사실이 충분하고 수법이 잔혹한 데다 사망이란 중대한 결과가 초래한 점을 고려해” 얼굴공개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유만으로는 이번 얼굴이 공개된 피의자가 최근 얼굴이 공개되지 않은 다른 흉악범죄 피의자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우리 언론이 피의자의 얼굴을 싣고, 신상을 털기 전에 먼저 ‘경찰은 왜 이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했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피의자 얼굴 공개는 범죄자에 대한 또다른 징벌이며 이 징벌은 자의적이거나 즉흥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되며 명확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언론이 ‘왜 이 피의자에 대해 얼굴 공개를 결정했는가’를 묻지 않고, ‘받아쓰기 언론’으로 전락한다면, 경찰이 피의자 얼굴 공개에 대해 객관적이고 엄격한 공개 기준을 가지도록 할 수 없습니다.

언론이 앞다퉈 이번 살인사건 피의자의 얼굴을 보도하고, 인터넷에서 피의자 가족과 주변 인물에 대한 신상털기가 이루어지자, 피의자 얼굴을 공개한 경찰은 곧이어 “피의자 가족정보 유포시 명예훼손”이라는 발표를 했습니다. 우리 언론은 피해자 얼굴 공개가 피해자 가족 인권 침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경찰발 보도자료를 그대로 보도하는 데 머무르고 있습니다.

경찰의 ‘피의자 얼굴공개’는 언론 보도를 통해 증폭되면서 당연히 피의자 가족의 2차 피해로 이어집니다. 언론이 해야할 일이 경찰이 피의자 가족정보를 유포하면 명예훼손이라고 발표한 보도자료를 받아쓰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경찰이 피의자 얼굴을 공개하면 그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싣고, 피의자 가족정보를 공개하면 처벌하겠다고 하면 또 피의자 가족정보를 공개하면 안된다고 말하는 언론에게 ‘알리지 않을 권리’와 ‘알 권리’의 갈등에 대한 통찰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까요?

정말 언론에게 묻고 싶습니다. 언론보도피해를 염려한(?) 경찰의 ‘명예훼손’ 발표를 보도하면서 ‘왜 지금 얼굴공개일까’라는 시민의 의구심을 풀어줄 수 없었는지 말입니다. 시민들에게 분노와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뒤이어 시민을 협박(?)하는 경찰발 발표로 언론은 2차 피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흉악범죄 예방을 위한 사회적 시스템을 요구하는 언론보도가 두려워 전전긍긍하는 경찰의 모습을 우리는 언제 볼 수 있게 될까요?

리현일 편집장  webmaster@shina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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